대한민국 내 임신중지의 실태와 전망
2019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기존의 ‘낙태죄’는 헌법불합치라고 판결을 내린 후,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체입법을 완료하라고 선고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구체적인 입법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기 위해,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의 김선혜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김선혜교수는 그녀의 최근 연구인 ‘위민온웹을 통한 여성들의 낙태약(이하 임신중지 약물) 복용 경험’ 에서 밝혀진 내용들을 소개하며, 대한민국에서 안전한 임신중지가 가능해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따라 대한민국에서도 임신중지의 비범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해당 판결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낙태죄 비범죄화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재판관들은 해당 법률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으며 의회가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하는 새로운 법안을 마련해야한다고 선고했습니다. 1년간의 논의 끝에 수정법안이 발의되었으나 개선 입법안이 통과되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서, 현재 상황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임신중지는 비범죄화되기는 했지만, 이와 관련한 법적 조항은 여전히 부재한 상황인거죠.
임신중지 권리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대한민국은 어떤 지형안에 놓여있나요? 임신중지 서비스 접근권이 보장되고 있는지, 관련된 법률적 내용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
임신중지가 불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이들이 임신중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새로운 법안이나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신중지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보장을 주장하거나 새로운 의료보험 체계를 마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임신중지는 경제적으로 지불능력이 있는 일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일부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 되고 있습니다.
임신중지 합법화와 더불어 성과 재생산 건강권 보장을 위해 동반되어야 하는 법적 조치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제는 성과 재생산 건강을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법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여성들에게 안전한 임신중지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성과 재생산 건강을 보호하는 그런 법이요. 현재의 법률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일부 조항들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법률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임신중지를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로 간주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현재의 상황에서, 여성의 필요와 선호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법률의 입법과, 임신중지를 의료보험 체계 안으로 포함시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교수님의 연구는 한국 내 임신중지 약물 복용량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도 이러한 증가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나요?
2010년대 이후를 기점으로 국내에서 임신중지 서비스를 누리는 것은 점차 더 어려워져 왔습니다. 이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국가적 위기로 규정하고 이에 따라 출산장려 정책을 시행하며 임신중지를 강력하게 규제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임신중지를 선택하나요? 그 중에서도 약물적 임신중지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관련해, 교수님의 약물적 임신중지 관련연구의 핵심이 무엇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임신중지는 원치않는 임신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치 않는 임신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데요. 이번 연구에서는 원치 않는 임신의 주요한 발생원인을 피임의 실패와 피임의 부재로 분석하였습니다. 여성들이 약물적 임신중지를 선택한 이유에는 법적 규제와 익명성 보장에 대한 우려, 임신중지를 둘러싼 낙인과 사생활 보호 등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약물적 임신중지는 여성들을 임파워링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은 임파워링의 측면 보다는 임신중지가 강력하게 규제되는 사회 속에서 보다 쉽게 임신중지에 접근하기 위해 이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임신중지 약물에 대한 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약물적 임신중지는 한국에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왜 약물적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수술적 임신중지를 넘어, 약물적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질문에 답하기 전에, 다른 질문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 왜 약물적 임신중지를 금지해야하나요? 약물적 임신중지를 금지해야할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약물적 임신중지는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이미 전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약물적 임신중지는 여성들이 보다 쉽고 안전하게 임신중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데요. 예를 들어서, 장애가 있는 여성들의 경우 약물적 임신중지를 통해 보다 편리하게 임신중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미 사회에는 다양한 피임법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와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피임법을 선택합니다. 임신중지 역시 마찬가지로, 다양한 방법과 선택지가 필요합니다.
교수님의 연구는 한국사회에서 원격 임신중지 서비스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원격의료가 임신중지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위민온웹이라는 단체가 한국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원격 임신중지 서비스가 한국의 보건의료체계에 편입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위민온웹은 임신중지 비범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단체입니다. 한국 현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위민온웹 덕분에 한국 여성들은 안전한 약물적 임신중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임신중지를 둘러싼 낙인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병원에 방문하기를 꺼려합니다. 위민온웹은 여성들로 하여금 이러한 낙인과 의료적 위계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또한 위민온웹을 통한 임신중지 약물 복용의 사례는 임신중지가 단순히 정부에 의해 금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올해 이루어진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임신중지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다루어질 것으로 전망하시나요?
현재 정부의 태도는 반-여성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성평등에 반하는 현재 정부의 태도는 비합리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현재 제가 가장 문제로 느끼는 지점은 임신중지가 의료보험체계의 영역 바깥에 있고, 그에 따라 서비스 금액역시 천차만별이라는 점입니다. 병원들은 임신중지 서비스를 상업화해왔으며, 결과적으로 일부 여성만이 병원에서 임신중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임신중지를 국민건강보험의 체계안으로 편입시켜 모두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